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나그네 맨발되어 북바위산에 오르다

맨발나그네 2015. 7. 1. 22:26

나그네 맨발되어 북바위산에 오르다

 

산 행 지 : 북바위산(772m)

산행일시 : 2015628()

누 구 랑 : 7000 산악회

산행코스 : 뫼악산장사시리고개 북바위산 목조계단 신선대 북바위 물레방아휴게소

사진은 ? : 소리새, 미루, 따스한마음


▲  GPS 기록(함께한 미루님 제공)


▲   함께한 산7000산악회 회원들

 

  세월이 참 어수선하다. 작년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하더니 올해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중후군)가 이 나라를 강타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아직 7월도 되지않았는데 연일 수은주는 30도 이상을 가리키고, 대지는 메말라 헐떡이고 있다. 이 모두가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일이건만 나부터도 이 일들과 전혀 무관한 척, 나와 상관 없는 척,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것들의 영향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니, 사람들은 모두 위축되어 매주 휴일이면 붐비던 수원시청앞의 산악회 버스 승차장도 평소의 1/3 밖에 안되는 듯 하다. 하긴 오늘 함께한 산7000산악회의 회장 따스한마음도 꽤나 망설이다 오늘 산행을 강행했노라고 실토한다.


▲   들머리인 뫼약동을 떠나 사시리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를 걷고 있는 회원들


▲   사시리고개을 넘고 있다


▲   날씨가 너무 더워 쉼의 횟수가 많아지는 계절이다


▲   또 한번 쉼을....


  그렇게 출발한 오늘 산행이다. 오늘 회원들과 함께할 산행지는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산세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있어 경관이 매우 뛰어나며, 산자락에 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서 산이름이 붙여진 북바위산이다. 근처의 용마봉은 월악영봉이 타고 다니는 용마(龍馬)이며, 북바위산의 북바위는 월악영봉의 호령을 천하에 알리는 하늘의 북이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고 한다. 어째거나 높지는 않지만 암반이 많아 산행의 묘미가 있고, 산행길이가 길지 않으며, 산 아래 송계계곡 주변은 물이 맑고 시원한 곳이다.

오늘의 들머리는 뫼약동이다. 수안보쪽에서 지릅재를 향하던 중 만나지는 뫼약동을 들머리로 북바위산으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사사리고개 갈림길에서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사시리고개에서 북바위산 정상까지는 1.1km에 불과하지만 제법 된비얄이다. 길은 내내 그늘 속이지만 워낙 더운 날씨이다 보니 제법 많은 땀을 흘리며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북바위산 표지석이 있는 정상이다.


▲   북바위산 정상


▲   북바위산 정상에서 함께한 지인들과...


▲   그냥 지나쳐 버린 북바위산의 북바위


▲   북바위산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   북바위산을 걷다 만난 야생화들


▲   고사목 사이로 월악영봉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하산길 내내 안구정화를 해주고 있는 월악영봉을 이어주는 하늘금


  

▲   30여년전인 1987년 2월 북바위산과 꽃잠자리 중인 맨발나그네


  정상에서 경관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한다.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어울어진 숲길을 걷는다. 노송과 바위가 어울어져 또다시 일일선(一日仙)모드로 바뀌어 편안한 숲길을 걷는다. 길 주변에서 만나는 여름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은 산길을 걷는 사람만이 관상할 수 있는 특권이다. 또한 숲속의 흙길과 주변 경관은 세상 모든 시름을 내려놓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리고 송계계곡 건너편으로 월악영봉을 포함하여 여러 산군(山群)들이 하늘금을 그으며 펼쳐져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그렇게 주변의 경관과 노송들의 아름다움에 홀려 걷다보니 산부인과바위를 언제 지났는지, 북바위는 어디였는지 모른채 지나쳐 버렸다. 30여년전 꽃잠자리를 치룬 북바위산이건만 한 번 안아본 여인()이었다고 너무 전희에 소홀하지 않았나하는 자책이 앞선다. 하지만 또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30여년전에 비해 더 요염해지고 더 섹시해진 그녀 북바위산의 자태에 홀려 그녀와의 운우지정에 혼을 빼앗겨 그렇다고 우긴다면 독자들은 이해하리라.


  

▲   슬픈 역사의 흔적인 소나무들의 깊은 상처


▲   우로부터 한치재님, 소나무님, 맨발나그네


  

  

  

▲   북바위산에서 만난 소나무 분재들

  

  길을 걷던 중 꽤 자주 만나는 소나무들의 깊은 상처는 우리들의 슬픈 역사이다. 일제강점기 항공기 연료로 쓰기위해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훼손한 흔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고사한 소나무도 많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북바위산은 명품 노송들의 전시장이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어렵게 생을 이어가는 소나무는 수분과 영양분 부족으로 몸을 비튼다. 그걸 인간인 우리네 잣대로 명품이네 보기좋네라며 추켜세우지만 소나무 입장에서는 주어진 삶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인 것이다. 어째거나 분재처럼 멋들어진 소나무숲길을 닉네임 소나무님과 그분 남편인 한치재와 함께 걷는다. 그 분 말로는 늘 한결같은 소나무가 좋아 그런 닉네임을 쓴단다.‘한치재는 그야말로 소나무의 본향이라해도 무방한 삼척이 고향이니 부창부수이다. 강원도의 평창, 인제, 양양, 삼척, 울진, 봉화 벨트는 소나무숲으로 유명하다. 그 외 지역으로 경주 주변이나 해인사 주변의 소나무숲도 일품이고, 특히나 언젠가 걸었던 안면도의 소나무숲은 잊혀지지않는 추억이다. 그 밖에도 많은 여인()들과의 운우지정에 솔향으로 신방을 빛내주었던 수 많은 소나무들은 일일이 기억하기 조차 버겁다.

하긴 한국인들은 누구나 소나무와 친하다. 수많은 지명에 송()자 들어가니 오늘 날머리인 송계계곡이 그렇고, 반송리, 운송리, 죽송리, 장송리, 어송리, 고송리, 가송리, 노송리...........


▲   소나무 등걸에 올라 탄 맨발나그네


  그뿐이랴. 옛날의 한국인은 소나무로 기둥을 하고 소나무 서까래로 덮은 집에서 태어나면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친 집에서 삼칠일을 지낸다. 산모의 첫 미역국도 마른 솔잎이나 솔가지를 태워 끓여 먹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산모는 몸조리를 한다. 그리고 소나무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고 살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생을 마감하고, 죽어서도 산소 주변에 둘러쳐 심어진 소나무와 함께하게 되니 그야말로 소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네 삶이다. 이렇듯 소나무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건만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Japanese red pine'이란다. 안타깝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소나무를 세계학계에 소개하면서 붙인 이름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단다.

북바위산의 명품 노송사이 숲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덧 날머리인 송계계곡 물레방아휴게소이다.



  세상은 메르스와 가뭄과 무더위로 어수선하지만 소나무숲길을 서너시간 걷자니 세상 시름은 어느덧 저멀리 떠나고 그 자리에 일일선(一日仙)으로서의 환희와 희열이 자리잡는다. 항상 떠벌리지만 가장 가난한 방법으로 가장 부유한 천국을 맛본다. 96세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철학계의 대부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얼마전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 ‘정신적으로는 상류층으로 살고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으로 살자그것만 받아들이면 행복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분처럼 학문을 통한 행복은 아닐지라도 시간날 때마다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여인()들과의 운우지정을 통해 행복을 얻고 있는 이 맨발나그네의 삶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김형석 교수는 김태길, 안병욱 교수와 함께 65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는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그 분들이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였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된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늙지 않는 비결로 안병욱 교수의 말을 빌려 꾸준히 공부하고 여행하고 연애하는 것을 꼽는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뒤풀이에서 두부전골에 좋은 산벗들과 마셔댄 미혼탕에 젖어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철학자의 인터뷰를 빌려 크게 외쳐본다.

독자들이여!!

꾸준히 공부하고 여행하고 연애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