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트래킹 일기) 유수렴동계곡기(遊水簾洞溪谷記)

맨발나그네 2021. 10. 15. 23:34

● 언 제 : 2021년 10월 14일

● 어 디 를 : 설악산 수렴동계곡

● 누 구 랑 : 지인들과

● 사 진 은 : 노루귀, 본인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온게 몇일이나 되었다고 설악의 단풍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여 따라 나선 길이다.

10월초 설악산 대청봉 오르는 길 해발1,200m 이상에서는 제법 단풍이 무성하기에 대한민국에서 단풍이라면 열손가락 안에드는 수렴동계곡(해발500~600m)이니 만산홍엽(萬山紅葉)을 기대하고 나선 길이나 계절은 변화무쌍하여 채색이 덜 끝난 상태이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일엽지추(一葉知秋)라, 봄엔 모든이가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모든이가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중국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수레 멈추고 단풍섶에 앉아 보니/ 늦서리 맞은 단풍이 이월꽃보다 더 붉구나”라고 했다한다.

조선 후기 가객 김천택은 “추상(秋霜)에 물든 단풍 봄 꽃보다 더 좋아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하여 뫼 빛을 꾸며 내도다”라고 노래했다.

 

설악산 내설악의 수렴동계곡은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수렴동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길로 설악산의 여느 계곡과 달리 산길이 평지처럼 순탄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沼)와 담(潭)이 연속적으로 늘어서 있어 빼어난 절경을 자아낼 뿐 아니라 오색단풍으로 유명한 계곡이어서 찾은 곳인데 올해는 아직 채색이 덜 끝나 아쉬움이 많은 트래킹이 되고 말았다.

 

들머리는 백담사이다.

백담사(百潭寺)라는 이름은 대청봉에서 이곳까지 담(潭)이 100개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백담사를 떠나 수렴동계곡으로 스며든다.

수렴동계곡은 금강산의 수렴동계곡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하지만 육당 최남선은 ‘조선의 산수’에서 “금강의 수렴동이 오두막집의 들창에 친 발이라면, 설악의 수렴동은 경회루의 넓은 한쪽 면을 뒤덮고 있는 큰 발이라 할 것이다’고 평가했다고 하니 설악산의 수렴동이 한 수 위인 모양이다.

아직 덜 채색된 추색이지만 에메랄드빛 담(潭)과 소(沼)가 어우러진 계곡물이 흐르고, 숲이있고, 오랜 길벗들이 있으니 마냥 행복한 걸음 걸음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목표한 영시암이다.

영시암(永矢庵)은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으로 기사환국에 연루되어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김창흡(1653~1722)이 전국을 유랑한 끝에 이곳에 은둔하여 세상과 영원히 단절하겠다는 선언적 뜻을 담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김창흡은 영시암 일대를 “봉우리와 골짜기가 그윽하고 기이하며, 흙이 많아 작물을 심을 수 있는 곳이다”고 했다.

 

영시암에서 한참을 쉰 뒤 오던 길을 되집어 백담사로 향한다.

왕복 9.6km로 비록 단풍은 아쉬웠지만 조붓한 산길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로이 걸으며 힐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부동산으로 몇 천억이 왔다갔다하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 맨발나그네 수렴동계곡에 안겨 자연의 정취에 빠져 인생소풍길을 음미한다.

수렴동계곡 너른 품에 인간의 오욕칠정을 덜어내고 맑은 기운 받아들여 활기차고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한다.

 

▲ GPS 기록

 

▲ 들머리인 백담사 안내판

 

▲ 채색이 덜 된 설악산 수렴동계곡 길

 

▲ 수렴동계곡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 수렴동계곡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 영시암

 

▲ 영시암

 

▲ 영시암

 

▲ 영시암

 

▲ 영시암의 창건자 김창흡의 '암자를 얻고서'

 

▲ 백담사

 

▲ 백담사 앞 수렴동계곡의 작은 돌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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