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아름다운 암능과 노송이 어우러진 상학봉에서 신선이 되다

맨발나그네 2009. 11. 10. 18:37

아름다운 암능과 노송이 어우러진 상학봉에서 신선이 되다.

 

 ● 산 행 지 : 상학봉(834m, 충북 보은과 경북상주)

● 산행일시 : 2009년 11월 8일 (日)               

● 누 구 랑 : 화성시등산연합회원들과

● 산행코스 : 활목고개-미남봉-매봉-묘-상학봉(U턴)-치마바위골-운흥1리 마을회관(약4시간)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송수복기자, 본인

 

 

 

 상학봉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 위치에 있다.

  충북 알프스는 구병산,속리산 천왕봉, 묘봉, 상학봉에 이르는 43.9km의 산줄기를 일컫는다고 한다.

가보지 않은 알프스이지만, 그 알프스 만큼이나 아름다워 충북 보은군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산행코스란다.

그러나 전체를 걸어 볼려면 3박4일, 빨리 걷는다 해도 족히 2박3일은 필요한 길이다.

특히 백두대간길 속리산 문장대에서 북서쪽으로 빠져나온 산줄기가 관음봉, 두루봉, 묘봉을 거쳐 불쑥 솟아올라 상학봉에 이르르고, 다시 매봉과 미남봉을 거쳐 활목고개에 이르는 길이 속리산 서북능선인데 오늘은 그중 일부인 활목고개-상학봉을 거쳐 운흥1리로 내려오는 길을 걸어보고자 일행과 함께 나선 길이다.

 

 

 

  

전날부터 내린 비로 인해 산행이 어렵겠구나 했다.

가는 차안에서도 계속 비가 오면 어쩔까 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충청북도에 들어서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아 보였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는 37번 국도가에 있는 활목고개이다.

안내자가 없으면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제(11월7일)이 입동. 겨울의 문턱이자 가을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이제 그 곱던 단풍도 잠깐의 영화를 뒤로 하고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우리의 발밑에 뒹근다.

누군가는 계절과 인간의 공통점이 변덕이라 하던데, 계절이야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일 뿐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에겐 변덕으로 보이나 보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그 낙엽을 즈려 밟으며 활엽수 울창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화등연에 소개된 사진들을 보면 바위산이 분명한데 처음의 한동안은 육산으로 약하게 오르내림을 하며 걷게 된다. 

중간에 날씨가 괜찮을 것 같아 맨발이 되었으나, 맨발 500km를 시샘하는지 미남봉에 이르니 작은 빗방울이 우리를 맞는다.

할 수 없이 맨발 500km는 다음으로 미루고 등산화를 찾아 신는다.

 

 

 

 조금 내려가니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멋드러진 조망대를 만난다.

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본 속리산 서북능선은 가히 알프스란 이름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절경이다.

 지난달 다녀온 설악의 공룡능선의 웅장함에는 못미치지만, 작은 아기공룡의 등허리 모양 기묘한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게 그 자태를 뽑낸다.

 

 

 

 

이후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모두들 우비를 입어야 할지, 거추장스러우니 그냥 가야 할 지 몰라 괜한 걱정들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활목고개로 부터 1시간 정도를 걷다 보니 운흥1리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는 안부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곳을 통해 많은 분들이 올라오고 있다.

 우리 선두인 예닐곱명은 기상여건과 시간등을 고려하여 상학봉을 거쳐 묘봉까지를 욕심내며 열심히 걷는다.

 

  

여기쯤이 매봉일까? 표지판도 없고, 날씨도 비속이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환상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동양화 한폭이 거기에 있다.

비 속이지만 카메라를 꺼내들고 같이한 산우님들을 담아 본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몇백년은 족히 견디었을 소나무는 그냥 하나의 분재이다.

수석과 분재가 어우러져 나를 동양화속의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여기 저기 등산로마다 널려있는 릿지는 로프가 매달려 있지만 미끄러운데다가 그리 만만한 코스가 아니어서 가는 이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동양화 속의 신선이 되어 그 암능구간을 오르내리는 맛이란 짜릿하다 못해 희열을 느낀다.

이산 저산 많이도 그들의 품에 안겨 보았지만, 오늘은 더욱 더 남다르다.

옛날 군대시절 유격훈련을 받던 일을 회상하며 세미클라이밍을 즐겨본다.

하긴 이런 곳을 철계단으로 뒤덮어 놓았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볼상사나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발한지 2시간여가 지난 어느 암봉 못미쳐에서 간식을 먹는다.

요즘 막걸리가 유행처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던데, 오늘도 한스맥님이 준비한 막걸리 몇잔씩을 걸친다.

불교에서는 술을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이라 한다던데 오늘은 비속에서 암벽을 오르내리느라 지친 우리 몸에 지혜대신 기운을 북돋아 준다.

같이한 산우님들은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막걸리의 힘을 빌어 열심히 오르다 보니 상학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너럭바위와 만난다.

물론 위 사진은 상학봉에서 바라본 너럭바위 전망대와 우리가 지나온 길들이다.

  선경!!!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나는 길 내 한몸도 괜신히 빠져나가야 하는 굴도 지나고 , 상학봉 못미쳐 제법 넓은 자연석굴도 통과하며, 그렇게 오르고 올라야 볼 수 있는 풍경. 거기다 비속 운무가 아스라이 주변을 묻어주어 그야말로 신선과 선녀들만이 놀 것 같은 그런 풍광이다. 

 

별천지이다.

암능길을 로프에 의지한채 오르 내려야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은 오직 산의 품에 안기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리라.

비가 오면 오는대로, 눈이 오면 오는대로, 자연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고자 하는 이에게 보일 뿐이다.

항상 그자리에서....

 

 

 

  

자연석굴을 지나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 조금더 오르고 나니 거기 상학봉이 기다리고 있다.

정상 부근 암봉에 학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때맞추어 사진속에 고고하게 비상하는 저 새는 이 상학봉을 지키는 학이던가? 

아님 신선이 잠시잠깐 학으로 변신하여 비속을 뚫고 귀한 손님이 왔다고 우리를 반겨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산우님들의 미모에 놀란 선녀들이 그 미모를 확인하기 위해 학으로 변신한 것인가?  

아무튼  신선이 되어 선경에 다다른 기분이다.

 

 

 

 

상학봉 정상은 아담한 2층 바위로 되어있다.

그곳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좌선이라도 할라치면 신선이 따로 없겠지만, 4~5m 남짓한 바위도 그냥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는 그곳에 올라 갈 수 있는 시설물이 있었나 본데 안전문제 때문에 철거 된 듯 보인다.

 

  비속 운무로 뒤덮혀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의 사방팔방 조망은 가히 절경이다.

지나온 서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매봉, 미남봉, 그리고 그 너머로 아름다운 암능과 기암과 거석사이로 몇백년간 뿌리내리며 그 삶을 지탱해온 친근한 노송들이 그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반대편 동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충북 알프스 구간중 가장 아름답다는 상학봉~묘봉간의 능선과 그 너머 문장대로 이어지는 길이 운무 속에 한폭의 진경 산수화를 만든다.

아니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 보아도, 가깝게 보아도, 멀리 보아도, 이곳은 분명 고고한 학이 뛰어 놀고, 신선이 선녀들과 함께 노니는 그런 곳임이 분명하다.

 

  그곳 상학봉 정상에서 정상주를 한잔씩 나눈다.

김석렬대장이 이번 산행기의 제목을 제시한다.

'너희가 물에 말은 소주를 먹어는 보았는가?'로.

그러나 산행기 제목으로는 좀 거시기할 것 같아 채택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주권을 쥔 김대장이 노인네라고 나에게 첫잔을 주길래 우선 '고시레'를 외치며 상학봉 산신님들과 조우한다.

같이 오른 일행중 한분이 '고시레'가 무어냐고 뭇길래 대충 이야기를 하곤, 이 지면을 통해 조사해 올려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니, 여기서 잠깐 '고시레'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겠다.

 '고시레'는 표준어가 고수레라 한단다.

들에서 음식을 먹거나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에, 귀신에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씩 떼어 던지며 외치는 소리라고 하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숙종때 북애노인(北崖老人) 이 지었다는 『규원사화(揆園史話)』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옛날에 고시(高矢)씨가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함께 농사짓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들에서 농사짓고 산에서 나물을 캐던 사람들이 고시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밥을 먹을 때 '고시네'라고 했다고 한다.>라고. 

고시네-고시레-고수레의 순서로 변했을 거란다.

 

 

 

천하절경이라고 마냥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신선과 우리 같은 범인의 차이 이리라.

마음이야 충북 알프스 구간중 가장 아름답다는 상학봉-묘봉 코스를 거쳐 운흥2리로 하산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으나 김석렬 산행대장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U턴하여 치마바위골로 하산하기로 결정을 하니 다음을 기약하며 따를 수 밖에.... 

기왕 U턴하는 것 아름다운 암능길이라는 토끼봉 쪽으로의 하산하고 싶건만 그것 조차도 허락치 않는다.

 

 

 

 

 

 내려오는 길 계곡은 낙엽이 발목까지 묻힌다.

가을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언제 왔는가 싶었는데 벌써 훌쩍 겨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가을이 떠나가고 있다. 

이 짧은 가을을 보내며 내 나이 또래의 중년이라는 시기가 계절로 따지자면, 꼭 가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잠깐 울적해 진다.

 떠나는 가을을 잡을 수 없듯이 내 인생의 중년이라는 계절도 그렇게 흘러 갈 것이다.

그래 세월을 붙잡으려 안달 복달하지 말자.

그냥 세월에 내몸을 맡기고 그렇게 사는 거다.

산을 벗삼아......

애인삼아.....

 

 

 

 

  

내려오는 길 빗줄기는 잦아들고, 한잔한 정상주에 취해 그저 망상에 젖어 내려오는 길, 문득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곳에 멋진 풍광이 나를 맞는다.

이래서 시간이 나면 배낭을 걸머메고 산과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녀, 산의 품에 안기나 보다.

 

   다행히 산사랑은 인간들의 사랑에서 오는 애욕이나 집착이 없어 좋고 아름답다.

애욕이나 집착은 소유욕에서 온다고 보는데, 산이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 않는가?

그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시 잠깐 그들의 품에 안겼다 떠나면 또다른 이들이 그들의 품에 안기어 사랑을 나누어도 애증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감히 나는 산을 사랑한다고 외쳐본다.

그리고 항상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

먼 훗날 다시 너의 품에 안겨 옛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불태우리라고....

 

 

 

 

운흥1리에 도착하여 바라본 상학봉은 멀리 보아도 아름답다.

화려하고 이름난 속리산에 가려 빛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오늘 너와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행복이었다.

아마 나는 항상 너를 그리워 할 것이다.

내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 비속을 뚫고 힘들게 너를 품었던 오늘을 생각할 것이다.

내 삶이 외로울 때는 너의 빼어난 자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옛날을 이야기하며 너의 품에 안길 그런 날을 기대하며 미소지을 것이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움에 몸둘 바를 몰라 할 때에도 너 상학봉이 모든이를 말없이 품어주던 넉넉함을 생각하며, 그 그리움을 달랠것이다.

 오늘 너 상학봉과의 인연이 정말 행복하구나............

 그리고 화성시등산연합회 여러분들과 함께여서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